풍수와 정조편 1부
이 야그는 3부작으로 2010년 증권사이트인 팍스넷에서 활동중이었던 어느 분의 글로(그분의 필명이 "심심..."으로 잘 생각나지는 않습니다) 그 당시 본인은 주식에서 완전 개작살 나서 깡통 찰 시간만 카운터하고 있는 시기였으며(물론 억을 날리고 결국 깡통찻음. 지금은 주식과 담쌓고 생존 중) 이때 이 글을 좋게 읽었고 또한 글이 여러편으로 장문이라 천천히 두고두고 보기 위해 스크랩한 것 같습니다.
요즈음의 정치가 하도 개판이라서 그런지 매스컴에서 조선후기의 위대한 개혁군주인 정조대왕 야그들이
방송되고 하길래 컴을 뒤져보니 저장되어 있어 보기 좋고 읽기 좋게 쬐끄만 수정 보완하여 다시 블로그에
올립니다. 원작가 분이 아직도 생존해(?) 계신다면 우리의 미래를 위해 공유를 허락하시길,,,,
드라마 이산 - 이서진
오늘부터 정조대왕에 대해서 시작하겠다고 했는데 사실 정조만을 가지고 이야기 하면
재미도 없고 글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지도 않고 흥미도 떨어지고 우스운 노인네 되는겨,,,
기본 줄거리를 잡아보니까 효종부터는 최소 들어가 주어야 이야기의 재미가 쏠쏠한겨,,,
효종이 인조의 둘째아들인겨,,
잘들 알것지만 병자호란의 혼란속에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청에게 개쪽을 당한겨,,,
그리고 두아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청나라에 볼모로 가게되는데
거기서 소현세자가 청의 발전된 문물에 눈을뜨는겨,,,또한 서양의 천주교와 과학 문물에도,,
그러면서 청과 아주친하게 지내는겨,,,한마디로 원수로 여기지 말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본겨,,,
그때부터 아버지 인조는 소현세자를 의심하면서 못마땅하게 여기는데
혹시 저넘이 청을 등에업고 나를 밀어내고 왕을 차지하려는가 하고 노심초사 하는겨,,,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귀국한 두 왕자중에 세자인 소현세자가 두달만에 갑자기 죽어버리는겨
분명한건 독살이 거의 확실한겨,,,
하다못해 실록에도 독살설을 의미하는 글이 남겨져 있다면 두려움에 말만 못했을 뿐 확실하다고
보아야 타당한겨,,, 그래서 둘째인 봉림대군이 세자가 되고 왕이되어서 효종임금이 되는겨,,
최대한 짧게 썼는데 여기까지가 얼마전 내가 재밌게 보았던 드라마 추노의 배경인겨,,,ㅋㅋ
난 세상에서 드라마가 제일 재미있는겨,,ㅋㅋ
드라마는 시청률이라는 압박으로 역사적인 사실들을 많이 왜곡하는게 있기 때문에
보면서 그런것들 찾아내는 재미가 아주 좋은겨,,,ㅋㅋ
그런데 효종은 소현세자와는 반대로 청을 군사적인 행동으로 혼내주려는 북벌론을 주장했어,,
한마디로 애들 고무줄 놀이에서 부르는 "무~찌르자 오랑캐" 이거여,,,
머리속에서 아련한 어린시절이 순간 스치누만,,,,
고무줄 놀이하는 근처를 서성이며 치마 입은 여자아이를 유심히 관찰하고
흠쳐보던 그 꽃무뉘 빤쥬,,,
내눈엔 벚꽃 흐드러지는 길보다 더 화려한겨,,,
더보고 싶을땐,,, 아이스께끼가 있는겨 ㅋㅋㅋ
흐미,,, 또 삼천포로 빠지네 이거 ,,,,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효종말엽에 당시 조정에서 어떤 세력이 강한 힘을 가지고 있냐 하면 우암 송시열을 필두로한 산림,,,
효종 어릴적 스승이기도 하고 송시열은 조선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 주자학의 대가이자
주자학의 숭배자였고 그래서 명과의 의리를 중요시 여김에 따라 효종과 더불어 청을 치자는
북벌론을 찬성하는 듯한 사람이였지만 참 희한하게도 말은 그렇게 하는데 사실상 북벌론을
찬성하는듯 하면서 껀껀히 다른 이유로 반대를 하지,,,
송시열
송시열이 효종에게 몇번의 봉사를 올리는데 마지막 올린게 정유봉사 인겨,,,
내용이 무척기니까 간결하게 한마디로 말하면 "북벌론 자꾸 하자고 하면 우리는 너랑 안놀겠다" 이거여,,,
도대체 북벌론인지 북친론인지,,,난 모르겠어 ㅋㅋ
알아서들 판단혀 ㅋㅋ
한가지는 짚고 넘어가야 하는게 교과서에서 배우기를 송시열은 북벌론자인데,,,
교과서좀 고쳐주면 안되는겨 ,,,??..
사실상 송시열을 비롯한 노론들 땜에 북벌을 못했는데 왜 북벌론으로 자꾸나오는겨 ??,,
이제 슬슬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 풍수로 들어가기 위한 무드를 내가깐겨 ㅋㅋㅋ
이 정유봉사 이후 두말만에 효종이 갑자기 죽어,,,
죽은 효종을 두고 장례의 절차와 상복의 예를 따지면서 붉어진게 예송 논쟁인겨,,,
효종이 죽은 다음에 입관을 하려고 하는데 시체가 어마하게 부어올라서 입관이 안되는겨 ,,
어찌 이런일이,,,
이걸 두고 독살설도 제기 되는데... 또 삼천포로 빠지면 길어지니까 여기서 끊을껴,,
그래서 급하게 나무판을 덧대어서 입관을 시키는데 얼마나 논쟁이 많았겠어,,,
예송논쟁은 예를 두고 싸운논쟁이지만 그런게 모두 당파싸움인건 알지 ,,??,,,
그리고 계속되는 논쟁속에서 우리가 좋아하는 풍수로 이제 들어가는겨 ㅋㅋㅋ
급기야 효종의 왕릉 택지를 둘러싸고 半風水(반풍수) 논쟁으로 번지는겨,,,,
반풍수란 풍수에 대해서 어설프게 아는것들이 나대고 다닌다 이런뜻인겨,,ㅋㅋㅋ
이 반풍수에서 송시열의 산림에게 공격받은 사람이 남인 고산 윤선도 인겨,,,
윤선도
윤선도는 수원을 추천하였고 송시열이 추천한 곳은 동구릉에 원릉 그러니까 지금의 경기 구리시인겨,,,
근데 당시 세력당파 싸움에서 노론 송시열이 한테 윤선도는 쨉도 안되는겨 결국 송시열이 이기고
효종은 구리에 묻힌겨,,,
논쟁에서 패한 윤선도는 73살에 또 유배가는거고 ㅋㅋ
한마디로 윤선도는 반풍수된겨 ㅋㅋㅋ
조선시대에서 윤선도만큼 유배 생활 오래한 사람도 드물겨 ,,
물론 오래살아서 그런 것도 있고,,,
근데 유배는 하는데 죽지는 않어,,,그래서 조선문학에 한획을 긋는 인물로 남기는 한겨,,,
문학 좋아하고 시조 좋아하는 사람들은 고산 윤선도 그의 천재성을 알겨,,,
이때 윤선도가 유배떠나기전에 예언같은 한마디를 하는겨,,,
"10년이 지나지 않아 효종능에 큰변고가 생겨서 반드시 이장을 하게될것이요""나는 이일을 보지 못하고 죽겠지만 제공들은 보게 될것이요 "
"그때 내말이 생각날 것이요 "고산유고 6권 부록에 나오는 말인겨,,,
이쯤에서 어부사시사 한번 읊고 술한잔 땡기고 가 말어,,??,,ㅋㅋㅋ
그런데 윤선도에 말마따나 효종능이 구리로 간지 일년째 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는겨,,
석물이 기울어지고 틈이 생기는등 문제가 생기는겨 ,,,
결국 현종때 천장(이장) 하는겨,,
앞에 왕릉80리 할때 잠깐 말했었지 ??,,
지금의 세종과 효종능이 경기여주 160리 밖으로 나갔다고,,,
바로 효종능은 이런 이유인겨,,
그래서 결국 천장해서 세종대왕 근처에 효종이 누운겨,,,ㅋㅋ
이게 윤선도가 10년 예언하고나서 14년만에 일어난 일인데
도대체 왜 이렇게 조선시대에는 쪽집게 예언가들이 많은겨,,,??,,,ㅋㅋ
물론 이때는 윤선도 말대로 자신은 죽고 없는겨,,,
정조대왕의 풍수를 말하려면 윤선도가 꼭 필요해서 여태 이야기를 깐겨...
그러니까 현종, 숙종, 경종은 일단 빼서 좀 끊고 가자고 ,,,
다 쓰려면 노인네 손구락 지구력이 워낙 딸리는겨,,,ㅋㅋ
여태 정조는 한마디도 못한겨,,, 하지만 이제 시작하는겨 ,,ㅋㅋ
조선시대에는 왕이 죽으면 계령이 선포되는데,,,오늘날로 치면 계엄령,,,
그리고 그계령 아래 왕권이 이양되는겨,,,,
계엄령 말하니까 슬슬 우덜덜 하는 분위기 잡히면서 집중되는겨 ,,?? ㅋㅋ
영조가 죽고 계령이 선포되고 정조가 즉위하고는 계령 선포 아래 왕권이 이양되는데,,
이 때 정조가 무지하게 큰사건을 터트리는겨,,,
嗚呼 寡人思悼世子之子也 (오호 과인사도세자지자야)
"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 ,,,
이 한마디에 조정은 완전히 뒤집어지는겨,,,
이 말 한마디에 사도세자의 죽음에 가장 밀접한 노론은 300만톤의 오함마로 머리를 맞은 느낌인겨,,,
집에가서 피난 준비로 필수품인 라면부터 챙겨야 하는겨,,,
피비린내가 벌써 풍기는겨,,,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었던 정조가 엄청나게 큰 일을 내고 만겨,,,
하지만 정조의 위대함은 결과적으로 피의 복수를 최대한 하지 않았다는 것인겨,,,
같은 경우에 연산군을 보면 답이 나오는데,,,
연산군은 어머니가 죽은 줄도 몰랐지만 정조는 직접 아버지가 죽는것을 지켜본겨,,,
누가 더 복수심에 불탔겠어 ??
연산군과 정조의 차이가 이토록 큰겨,,,
사도세자가 얼마나 불쌍하게 죽은지 아는겨 ??,,,
영조의 큰아들 효장세자가 10살때 죽는겨,,,
그리고 영조가 42살에 사도세자를 낳은겨,,,
사도세자말고는 남은 아들이 없는겨,,,
영조는 늦게 본 손인 데다가 유달리 사도세자가 총명해서 무지 이뻐라 한겨,,,
거기에 문무 둘 다를 겸비한겨,,,
요즘 말로 몸짱 엄친아 정도되는겨,,,ㅋㅋ
그런데 어느날 부터 영조하고 조금씩 사이가 벌어지다가,,
소론이 주도한 나주벽서 사건이 터지는데 이걸 계기로
노론이 소론박멸 작전에 나서면서 사도세자를 포함 무지하게 많은 사람을 죽이는겨,,
영조는 탕평책을 폈던걸로 유명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사실상 노론의 일당독재가 되버리는겨,,,
사도세자는 소론 인사들하고 꽤 친하게 지낸 인연으로 또 정치적 소신도 그러했고
그래서 나주벽서 사건으로 정치적 보복과 숙청에 반대 표명을 분명히 함으로써
아버지 영조와의 사이가 눈에 띄게 벌어지는 결정적 순간을 맞는겨,,,
결국 노론의 일당독재가 되버리고 나서 부터는 어마어마한,,,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는 별의별 음해를 사도세자는 다 받는겨,,,
영조가 나이가 많이 먹고 병골해지니까 노론은 더욱 급해졌지,,
이대로 사도세자가 왕에 오르면 지들이 한짓이 스스로도 얼마나 두려운지 승부수를 뛰우는겨,,
청지기 나경언을 매수해서 사도세자가 영조를 죽이고 왕권을 차치하려고 모사를 꾸민다고
형조에 글을 올려 임금을 직접 대면하고서는 동궁의 허물 10여개를 적은 쪽지를 영조에게 내민겨,,
그 쪽지는 영조에 의해서 불태워지고 나경언마져 참형해서 후세에 전해지지는 않는겨,,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일당독재는 그 커진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피를 부르고 잔인해 지는겨(요즈음 정치가 딱 그렇네요)
물론 실록을 살펴보면 사도세자가 심한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인 것 처럼 묘사되고
아주 잘못 된 행동을 한 것처럼 나오지만 이때 노론이 집권한 시대의 기록들은...
또 대부분의 역사가 그렇듯 승자쪽에서 기술된 것이라 어디까지 믿고
어디까지 믿지 말아야 할지는 그 후에 발생한 사건들로 추측해볼 수 밖에 없는겨,,,
실록 기록을 보면 사도의 탄생모 영빈이씨가 영조에게 무언가 밀고를 하고
자기자식을 죽이는데 찬성하고 뒤돌아서는데 그 밀고의 내용도 전해지는게 없는겨,,,
중요한 것은 밀고인겨,,,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당시에 노론에 의해서 사도세자가 많은 음해를 받은 건 사실이고
노론 일당으로 권력의 형세가 기울었기에 많은 이들이 거기에 동조하는 것은 당연한겨,,,
거기에 사도세자가 더욱 불쌍한 것은 조정 대부분의 대신들이 노론이라 조정대신들은 물론이고,
영조의 장인과 부인 정순왕후는 너무나 당연하고 자신의 장인 홍봉한과 부인 혜경궁 홍씨까지도
노론쪽 사람이라 가문을 위하여 사도세자를 버리고 음해를 모른척 하거나 일부 가담하는겨,,,
드라마 이산에 나오는 혜경궁 홍씨는 드라마인겨,,,
결코 역사적 사실로 볼때 드라마 같은 착한 모습이 아닌겨,,,
그리고 혜경궁 홍씨가 써서 힛트를 기록한 한중록 살펴보면 말여,,
자신의 가문과 자신을 옹호하는 글들만이 써내려져 가는겨,,,
그런데 이때가 순조를 앞세우고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할때인겨,,,
정조가 죽고나서 정순왕후와 노론벽파가 어린 순조를 앞세우고 수렴청정을 하고
천주교를 구실로 천주교 탄압을 하면서 다시 노론시파와 남인을 제거하는 것으로
이용하는데 왜 이시기에 이제서야 혜경궁은 자신과 가문에 대한 변을 늘어놓았을까 ??,,
아들 정조가 살아있을 때 좀 해보지 왜 손자한테 징징거리는겨,,,
그건 정조는 그 시기에 존재했기에 정조에게는 거짓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아는겨,,,
직접적인 사실을 알 수 없는 순조한테는 이런 거짓이 통할거라고 본겨,,,
정조가 죽고나서 정조 무덤가지고 무서운 짓거리를 하는 정순왕후와 노론들을 보면
또 혜경궁 홍씨의 침묵을 보면 거짓말이 들통나는겨,,,,
기록은 거짓을 만들수 있어도 무덤은 거짓을 야그 할 수가 없는겨,,,
그게 풍수의 위대한 힘인겨,,,ㅋㅋㅋ
왜냐고 ??,,, 거짓을 만들기 위해서 땅을 없애고 산을 짤라서 옮길겨 ??,,ㅋㅋㅋ
모 천지창조 한다는겨 ??
그렇게 할 수 있으면 해보라고 혀,,,ㅋㅋ
할수없으니까 풍수는 거짓을 말할 수 없는거여,,, ㅋㅋㅋㅋ
정조가 사도세자의 아들이라고 말한 것은 정조는 모든것을 알고 있었고
사도세자가 저들이 그려 낸 그런 모습은 분명 아니라는 것을 난 반증한다고 보는겨,,,
정조의 무덤으로 어떤 장난질을 하냐고 ??,
뒤에보면 아는겨,,
아들 무덤가지고 장난질하는데도 침묵하는 혜경궁을 보면 한중록의 내용이
일방적인 홍씨의 억측이라고도 볼수있는겨,,,
결국 사도세자는 뒤주에 갇혀서 물한모금 못마시고 8일째 되던날
5월 21일 뒤주속에서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는데,,,
수원화성 사도세자 뒤주
이때 궁과 조정에서 오직 한사람만이 사도세자를 살려 달라고 외치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정조,, 사도세자의 어여쁜 아들 ,,
그이름 이산 이애 하나뿐이 없는겨,,,
흐미 ,,, 화가나서 써 내려 가다보니 풍수는 어데로 간겨 ?? ㅋㅋ
요즘 의학으로 풀어본 영조와 사도세자의 분석
사도세자가 뒤주에서 어마어마한 고통을 받을때 아버지 영조는 밥묵고 잠도 잤다.
도저히 이해가 안되지만 영조는 지독한 편집증 환자였다
예로 양치질 할때 미운놈이 옆에 있으면 거기다 확 밷어 버릴 정도로...
그리고 사다세자는 울화증을 앓고 있었다
모든게 싫고 무기력하고 울화가 치밀어 아무것도 할수 없을 정도로...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이 말을 영조가 죽고 왕이 되어서 계령기간에 해버린겨,,
10년을 넘게 가슴속에 꾹꾹 눌러 참고 하고 싶었던 말인였던겨,,,
사도세자가 죽고 정조는 효장세자 ,,
즉 10살때 죽은 자기 큰아버지 양자로 입적하는겨,,
영조가 그렇게 한겨 ,,,
왕이 될라면 사도세자는 역모를 한자라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겨,,
길동이만 아버지를 아버지라 못부른게 아녀,,,,
정조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었던겨,,
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수 없었는지 또 묻는 사람 반드시 생기는겨,,
그사람은 내 주먹이 무척 빠르고 아프다는 걸 알게되는겨,,ㅋㅋ,, 내 설명 안듯고 딴짓한겨,,
그 어린나이에 왕이 되어서 아버지의 명예를 되찾기 위하여 노론일당 속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어린게 얼마나 참고 참는 인고의 세월을 보냈는지 ,,,
왠만한 어른들보다 심지가 굳은겨,,,
그러니까 대왕되는겨 ,,,아무나 대왕하는거 아녀 ㅋㅋㅋ
아무튼 이제 영조가 죽었으니 영조능 부터 풍수이야기 해야 하는데
나 무지 지친겨,,,,다음번으로 넘기는겨 ㅋㅋㅋ
풍수이야기에 집중을 해야하는 데 자꾸 쓰다 보면 떠오르는것도 많고
갈라지는 곳에서 설명으로 들어가 버리고 하네,,,
오늘은 국회도서관 전자 DB까지 검색한겨,,,근데 전자 DB는 가뭄에 콩나듯이 밖에 없는겨,,,
하고 싶은 이야기가 몇가지 더 있었는데 내가 아는 사실들이
정확한 역사의 기록인지를 확인해야 써 줄 수 있는건데 자료를 찾지 못해서
쓸 수 없는 이야기가 몇개 있는겨,,,ㅋ그래서 내가 시른겨 ??
여기서 옛날이야기 1부는 끝낼겨 ㅋㅋㅋ